<국화와 칼>을 읽고
저자 : 루스베네틱트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컬럼비아대학 교수역임) 이 책은 저자가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제출하려고 만든 일종의 일본 문화 분석 연구 보고서임)
국화와 칼 : 국화는 일본황실을 상징하는 꽃이고 칼은 일본 사무라이 계층과 그 정신적 지주인 무사도의 상징이다. 저자는 일본 민족의 영혼 깊숙이 숨어 있는 전혀 다른 특징 두 가지를 표현하기 위해 국화와 칼이라는 상반되는 이미지의 사물을 제시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일본인은 예의바르며 온순하고 겸허하지만 거칠고 야만스러우며, 국화를 재배하는 일에 깊이 심취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길 좋아하지만 무사도와 칼의 명예에도 집착한다.
일본인은 특수한 수련을 통해 사람의 정신을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중시하고 체면을 따지는 이런 태도는 일본 문화 속에 뿌리 깊이 박힌 관념과 관련이 있다.
천황이 없다면 일본은 일본이 아니다.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며 국민 종교 생활의 핵심이다. 천황에 대한 국민의 숭배는 종교적 신앙을 뛰어넘는다.
일본인은 예의범절을 통해 사람 간의 계급 차이를 확인하며, 예의를 행할 때도 쌍방의 성별, 연령, 가족 관계, 과거의 친분 등을 고려해야 한다. 성별, 연령, 신분, 지위가 서로 같은 사람이라도 장소에 따라 그에 합당한 존경을 표해야 한다.
일본의 족보는 현재 살아 잇는 사람부터 시작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기록했다.
한편, 일본인은 먼 조상에게는 제를 올리지 않는다.
신사에서 제신을 참배하는 것과 별개로 각 가정에서는 조상을 기리기 위해 집 안에 제단을 만들고 비교적 근래에 돌아가신 6,7명의 위패를 모신다. 일본인은 매일 이 제단 앞에서 돌아가신 부모, 조부모,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을 위해 예를 올리고 묘비를 본 따 만든 위패 앞에 음식을 올린다.
일본인은 일단 어떤 사안을 결정할 때 그 결정이 가족의 명예를 지키는 데 꼭 필요하다는 것을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확신시켜야 한다.
황실과 궁정귀족을 제외한 모든 일본인은 무사(사무라이), 농민, 공인, 상인의 네 계층으로 나뉘고, 천민(청소, 사형수, 매장, 동물 가죽 벗기기 등의 일에 종사)은 최하층이었다.
유럽 중세의 기사와 달리 일본의 사무라이는 영지는 물론 농노도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봉록에만 의지해 생활했고, 그 액수도 그가 속한 다이묘 가문의 지위에 따라 달랐다. 사무라이 계층의 평균 봉록은 농민의 수입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최저 생계비에 불과해 가족까지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유럽 봉건시대의 법령과 달리 일본의 토지법은 봉건영주가 아닌 농민의 이익을 보호했다. 덕분에 영구적 토지 소유권을 가진 농민은 더욱 열심히 토지를 경작했다.
일본에서는 현행 행동규범에 저촉되는 행동을 하면 법적 제재를 받았다. 일본인들은 어떠한 규범을 거부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석대로 따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와 고결함이라고 보았다. 규범에 의해 한정된 범위는 그들이 이미 아는 세계이고, 신뢰할 수 있는 세계이기도 했다. 이런 규정은 모세의 십계명에 나오는 추상적인 도덕률과 달리 매우 구체적이다. 예를 들어 이런 때는 어떻게 하고 저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무라이는 어떻게 해야 하고 평민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형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동생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을 상세하게 규정했다.
데릴사위는 장인의 상속자가 되는 대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본래의 호적을 말소하고 처가의 호적에 들어가 장인의 성을 따라야 하고, 장인 장모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 하지만 희생이 큰 만큼 얻는 것도 많았다. 부유한 상인의 자손은 사무라이가 되고, 가난한 사무라이 일가는 부자와 연을 맺어 윤택한 삶을 누렸다. 이처럼 부유한 상인들은 계층제도의 틀은 그대로 유지한 채 교묘하게 융통성을 발휘해 상류층 신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세상 만물은 각기 자신이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신념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일본의 국교가 신토이다. 국가신토는 일본 내무성 신사국이 관리하고 모든 비용은 국비로 처리된다. 하지만 다른 종교의 각 파는 문부성 종교국에서 관리하며, 재정은 신자들의 자비로 충당된다. 이것이 바로 신토에 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므로, 국가 신토는 ‘국립교회’라기보다는 방대한 정부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신토는 전국 각지에 신사를 11만 곳 이상 보유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종교에 귀의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일본인은 결코 지나치게 엄숙한 태도로 종교를 대하지 않는다. 일본인이 산 속에 있는 신사나 절을 찾아가는 것 역시 휴일을 즐기는 한 방편이다. 사람들이 참배하는 대상은 ‘도리미’라고 불리는 신사 입구의 문이다.
군인들의 진급은 출신성분이 아닌 능력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 결과 군대에 대한 일본인들의 평가가 좋아지고 새로 개편된 군대체제에 대한 지지도가 상승했다. 군대의 중대나 소대는 대부분 같은 지역 출신들로 편성되었다. 사병들은 전시가 아니면 각자의 집과 가까운 군부대에서 병역을 마쳤다. 덕분에 사병들이 출신지역과 연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병역기간 2년동안 사무라이와 농민, 부자와 가난한 자의 관계를 떠나 군관과 사병, 고참과 신참병사의 관계를 맺었다.
최고 정책결정과정에서 군 수뇌부는 누구의 간섭도 허용하지 않았다.
군부 역시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계층 제도와 관련된 특권이 있었고, 그런 특권만 있다면 일본인은 군부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기꺼이 감수했다. 그것은 군부의 정책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계층제도와 특권의 경계선을 넘는 것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할 때 반드시 계층제도를 고려했다. 일본인의 가정과 대인관계에서 연령, 항렬, 성별, 계급은 모두 각 구성원의 행동방식을 결정짓는다.
일본인은 각자 ‘알맞은 자리’를 찾아 만족하며 사는 자신들의 도덕관이 다른 나라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일본 역사를 살펴보면 가장 큰 ‘은혜를 베풀어 주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 속한 생활권의 최고 지도자였다. 그들은 시대에 따라 다이묘, 쇼군, 천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최고 지도자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일본인의 생활 속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은혜를 잊지 않는’ 습성이다.
온(서양문화와 비교했을 때 일본의 온은 사랑이라는 의미보다는 부채의 의미에 가깝다. 온을 받으면 반드시 보답을 해야 한다. 따라서 온은 도덕적으로 구속성과 강제성을 띠고 있다.)에 보답하는 이런 윤리체계가 일본에서 순조롭게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은 누구나 ‘온’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받은 ‘온’을 반드시 갚아야 할 빚으로 생각해 아무런 거부 반응 없이 의무를 이행한다.
일본인은 모르는 사람에게서 뜻하지 않은 온을 받으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난처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상대방에게 아무 것도 해줄 마음이 없는데 그런 온을 받는 것은 부끄럽고 면목 없는 일로 상대방에게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감사를 표시하는 여러 가지 일본어 표현에는 ‘기노도쿠’와 마찬가지로 은혜를 받아 면목이 없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상점 주인들은 ‘스미마센’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 말에 내포된 진짜 뜻은 “당신에게 받은 호의를 다 갚아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이다.
미국인은 사랑, 관심, 너그러움, 인자함의 가치를 존중하고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일수록 더 귀한 대접을 한다. 반면 일본인은 이 모든 행위에 부수적인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이런 행위를 받는 사람은 ‘온’을 빚진 사람이 된다. 그래서 일본에는 “관대한 마음을 타고난 사람만이 타인의 ‘온’을 받을 수 있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중국인의 ‘인’은 긍정적이지만, 일본인이 쓰는 ‘인의’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일본인은 중국인의 윤리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규범을 완전히 달리 해석해서 그 지위를 격하시켰다. 일본인의 윤리체계에는 ‘인’을 대신해서 ‘의무’를 제약할 행위규범이 없다.
일본인은 조부나 부친처럼 자신의 기억에 남아 있는 조상에 대해서만 효를 실천하고 과거가 아닌 현재를 중시한다.
일본인의 효행관에서 가장 큰 의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효행의 대상을 살아 있는 사람에 국한한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고부간의 갈등이 매우 심하다. 며느리는 외부에서 시집온 사람이기 때문에 시어머니의 취향에 맞춰 살림을 하고 무조건 비위를 맞추며 순종해야 한다. 대개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기 아들의 짝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사회에 대한 의리’는 미국인의 부채상환 관념과 조금은 유사하다. 일본인은 ‘의리’에 대한 보답을 할 때 철저하게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일본인은 매년 두 번씩 선물을 준비해서 6개월 전에 받은 선물의 답례로 보낸다. 고용인의 집에서는 매년 고용주에게 감사의 표시로 선물을 보낸다. 그러나 일본인은 상대방에게 받는 선물보다 더 큰 가치의 답례품을 보내는 것을 금기시한다. 부담스러운 답례품은 “피라미 한 마리를 도미 한 마리로 갚는다”고 표현하고, 그것을 받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리’를 갚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인은 잔치, 장례식, 모내기, 집짓기, 친목모임 등이 있을 때마다 장래의 변제에 대비해 ‘의리’의 교환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일본인은 모욕이나 비방, 패배에 대해 보복하지 않으면 “세상이 평온해질 수 없다”고 여긴다. 훌륭한 사람은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것은 인성의 미덕이지 죄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국인은 비방이나 모욕에 과민하게 반응하면 ‘소인’ 즉 도덕적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일본인처럼 명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최고의 덕으로 보지 않으며, 불법적 폭력행위를 보복수단으로 삼는 것을 올바른 행위로 여기지 않는다. 또 선망하거나 혹은 위대한 행동으로 타인의 비방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인에게 인내와 자제는 ‘명예에 대한 의리’의 일부분이다. 일본에서는 여자가 분만할 때 소리를 질러서는 안 되며, 남자는 고통이나 위험에 직면해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돈이 아무리 많더라도 자신의 합당한 위치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모두 계층제도의 관습을 준수하며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인의 시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 (각자 자신의 분수에 맞는 자리에서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살아가며 왕에서 농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신의 지위와 역할에 만족하는) 토크빌이라면 계급 차별 자체가 결코 굴욕적인 일이 아니라는 일본인의 도덕관과 생활태도를 이해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자존심을 지키려는 자기방어 의식이 매우 뿌리 깊기 때문에 일본인 앞에서는 직업상의 과오를 지적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며 현명한 태도이다.
일본인이 예의를 중시하고 숭상한다고 해서 비방에 대한 그들의 민감한 반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미국인은 아주 가벼운 비평조차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일본인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일본인 화가 마키노 요시오가 미국에서 출간한 영문판 자서전을 보면......‘살인범’과 ‘비웃는 사람’을 내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살인범’은 타인의 육체를 살해한 사람이고 ‘비웃는 사람’은 타인의 영혼을 살해한 사람이다. 영혼은 육체보다 더 귀하다. 따라서 타인을 비웃는 행위는 가장 큰 죄라고 할 수 있다. ~~ 모욕이나 패배를 당했을 때 ‘복수’는 그에 반응하는 ‘바람직한 대응’으로 일본 전통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본인의 ‘아침 목욕’은 다른 사람이 튀긴 흙탕물을 씻어내는 행위이다 (복수행위의 일환)
일본인은 실패, 비방, 배척에 민감한 만큼 스스로 상처받는 일도 많다.
현대사회에서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은 적당한 방식으로 자살을 행하면 ‘치욕’으로 입은 오명을 벗고, 죽고 나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미국인은 자살을 절망에 굴복한 자기 파멸 행위로 치부하고 비난하지만, 일본인은 이처럼 자살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떳떳하고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자살이 ‘명예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최선의 행동방식이기도 하다.
명예는 일본인이 영원히 추구할 목표이자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하는 수단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인은 상황에 따라 태도가 변하는 것을 도덕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일본인은 상황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다.
일본 사회에서 ‘의리를 모르는 사람’은 동료들의 멸시와 미움을 받는 ‘불쌍한 인간’이 된다.
일본인이 즐기는 쾌락 중 하나가 바로 더운 물로 목욕하는 온욕이다.
일본인은 온욕을 즐기는 것만큼 신체의 단련을 중시해 매일 냉수욕을 하는 습관이 있다.
일본인은 잠자는 것도 즐긴다. 그들은 어떤 자세로도 편안하게 잠에 빠져든다. 때로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아주 달게 잠을 잔다.
일본인은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동양 국가 중에 이들처럼 빨리 잠자리에 드는 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농민은 해가 지면 곧 잠자리에 든다. ~~ 일본인은 단지 잠을 즐기는 것이므로 방해하는 사람만 없으면 어디서든 편안하게 잠을 잔다.
온욕이나 잠과 마찬가지로 일본인은 먹는 것을 즐거움이자 휴식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엄격한 훈련으로 간주한다. 짬이 생기면 일본인은 각종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의 색, 향, 맛을 꼼꼼히 따지고, 접시에 담는 양은 티스푼 하나 정도의 적은 분량이다.
영국인이나 미국인과 달리 교양 있는 일본인은 성적 향락을 부도덕하거나 외설적인 일로 보지 않는다.
일본의 전통적인 ‘인정’에는 동성애도 포함된다.
일본인은 ‘폭음’도 ‘인정’으로 간주해 미국인의 금주 맹세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간혹 음주와 식사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일본인도 있다. 그들은 일단 식사를 시작하면 절대 술을 마시지 않고, 음주와 식사가 전혀 다른 두 세계이므로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항상 덕은 악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수백년 동안 일본의 철학자와 종교인이 끊임없이 주장한 것처럼 선과 악이 싸우는 도덕관은 일본에 결코 맞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불교철학과 비교했을 때, 일본인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도덕이 경전 속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는 깨끗한 영혼 속에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인생의 중대 목표로 삼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단지 기분전환용일 때 의미가 있으며, 인간의 행복 여부를 국가와 가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충’, ‘효’, ‘정의’를 이행하려면 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물론 그런 인생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들은 그것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다. 이를 위해 결코 나쁜 일이 아닌 쾌락을 단념한다. 여기에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며 이것이야말로 일본인이 가장 칭송하는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속 세계에는 날카롭게 연마한 칼처럼 빛나는 도덕이 있다. 그 ‘칼’은 자주 연마하지 않으면 녹이 슬기 쉬우며,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녹’은 칼이 녹슨 것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다. 따라서 칼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신의 인격이 녹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설령 영혼에 녹이 슬었다 해도 영혼은 그 녹 밑에 여전히 빛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부지런히 연마하면 영혼을 빛나게 만들 수 있다.
일본의 서사시 <47인의 사무라이>는 세계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이 이야기만큼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도 없다. 일본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이 이야기의 줄거리와 자세한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정도이다. 이 이야기는 또 각종 영화나 연극으로 제작되었다.
일본인은 고결한 도덕적 품성을 갖춘 남자는 가장 먼저 “효‘를 따라야 한다고 여긴다. 만약 어머니가 아내와 이혼하라고 요구하면 아들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까지 있다 할지라도 이혼을 선택해야 한다. 일본인은 그렇게 해야만 그가 더 강인해진다고 말한다.
일본에는 어떤 종교도 자체 경전이 없다. 국가신토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 불교도 ‘불립문자’를 교의로 삼으며, 경전 대신 ‘나무아미타불’ 또는 ‘나무묘법연화경’을 반복해서 읊는다. 따라서 메이지 시대에 천황이 반포한 ‘칙유’와 ‘칙어’는 일본인에게 유일한 성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성전을 봉독하는 것은 신성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정중하게 예를 갖추고 나서 행해져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모세 십계’와 ‘구약 5서’를 대할 때처럼 봉안소에서 꺼냈다가 봉독하고 나면 다시 봉안소에 넣어야 한다. 칙유와 칙어를 봉독하는 사람은 한 글자라도 잘못 읽으면 그 책임을 지고 자살했다.
‘충’을 찬양하는 ‘군인칙유’는 일본의 기본 문서 중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 일본인의 마음속에서 ‘의리’는 여전히 도덕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서 ‘의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은 심한 비난으로 간주한다.
일본의 정치가이자 교육자인 오쿠마 백작은 일본인의 윤리 도덕관을 언급할 때 “성실이 가장 중요하며, 모든 도덕준칙의 기초가 ‘성실’이라는 말 속에 함유되어 있다. 고대 일본에서 윤리 도덕 개념을 표현하는 말은 ‘성실뿐이었다’고 말했다.
‘군인칙유‘에서 모든 덕행과 의무를 열거하고 ’성실‘로 귀결시킨 것은 전형적인 일본인의 특징이다. 중국인은 덕을 ’인애‘의 마음으로 귀결시키지만, 일본인은 먼저 의무의 준칙을 확립하고 나서 전심전력을 다해 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자중’의 의미는 일본인의 인생관과 잘 맞아 떨어진다. 일본인은 인생을 살 때 신중한 태도로 ‘호일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중’에 대한 이런 관점 때문에 그들은 실패했을 때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라고 해도 변명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일의 결과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과 관련되므로 행동에 앞서 그 결과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수치가 덕행의 근본이며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선행을 실천하는 길에 더 가까워진다고 여긴다.
일본인은 자기수련이 단전(자제력이 존재하는 곳)을 단련해 인생을 더 폭넓게 한다고 여긴다. 생활을 조종하는 능력을 개선하고자 일본인은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훈련도 한다. 자기수련은 처음 시작할 때는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금세 사라지고 훈련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훈련을 포기하기도 한다. 장사 수완의 발휘, 유도 실력의 함양, 고부갈등의 해소 등이 모두 자기수련의 성패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자기훈련을 처음 시작할 때는 새로운 욕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훈련을 피하려고 할 수 있다. 이 때 아버지가 나서서 “네 꿈이 뭔지 생각해보렴. 네가 지금 꿈꾸는 인생을 경험하고 싶다면 넌 이 훈련을 견뎌내야 해. 지금 네가 포기한다면 너는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단다. 나중에 네가 그런 처지에 내몰려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고 해도 나는 더 이상 너를 감싸줄 수 없다는 걸 명심하렴”하고 말하며 아이를 설득한다.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수련은 ‘자기 몸에 슨 녹’을 갈아 없애고 자신을 예리한 칼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이 원하는 자기수련의 목적이다.
미국인과 비교할 때 일본인은 효율적으로 행동하고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변명을 하지 않으며, 생활 속 불만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일본인은 미국인처럼 ‘평균적인 행복’을 얻지 못했다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일이 없다. 그들은 자기수련과정을 통해 ‘자기 몸에 슨 녹’에 대해 미국인보다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무아(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음)’는 선종에서 사용하는 말로 일본 상류층에서 매우 유명했다. ‘무아’가 나타내는 ‘숙련’된 경지는 세속적 경험이든 종교적 경험이든 상관없이 전류가 양극에서 음극으로 일직선으로 흐르듯 사람의 의지와 행동 사이에 ‘어떠한 장애도 없는’ 것을 가리킨다. ‘숙련’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의지와 행도 사이에 절연판과도 같은 장벽이 놓여 있다. 일본인은 이런 장벽을 ‘보는 나’ ‘방해하는 나’라고 부른다. 그리고 특별한 훈련을 거쳐 이 장벽을 제거하고 ‘숙련’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마치 회로 속에서 전류가 막힘없이 흐르는 것처럼 모든 행위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일본에서는 이런 경지를 ‘일점’이라고 표현하며, 이것은 행위와 행위자가 마음속에 그린 형태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일본인들은 ‘침착하고 당황하지 않는 마음‘을 기르는 훈련을 시험, 강연, 정치적 활동 등과도 연결시켰다. 일본인은 자기수련을 통해 ’일점(집중하는 태도)을 배양하면 어떤 일을 해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일본인이 사용하는 자기최면, 정신집중, 오관의 제어기술은 모두 요가의 수행방법과 유사한 면이 많다. 일본인은 마음 비우기, 부동자세 유지하기, 동일한 문구 반복해서 읊기, 어떤 특정 상징물에 정신을 집중하기 등의 방법에 역점을 두고 훈련한다. 훈련과정에는 인도에서 쓰는 일부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만 비슷할 뿐 일본인의 자기수련방식은 인도의 자기수련방식과 공통점이 거의 없다.
일본은 불교국가이지만 지금까지 윤회와 열반이 국민적 신앙의 일부분이 된 적이 없다. 소수의 승려들이 개인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했어도 민간 풍습이나 사상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본인은 사후세계에 별 흥미가 없다. 일본의 신화는 주로 신들의 이야기를 전할 뿐 사후세계와는 관련이 없다. 심지어 일본인은 불교의 인과응보 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신분이 가장 낮은 농민도 죽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 집에 모시는 조상의 위패를 ‘부처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 국가 가운데 부처라는 호칭을 이렇게 사용하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무이하다. 그리고 죽은 자를 ‘부처’라고 부르는 민족이 열반에 도달하는 것과 같은 어려운 목표를 추구할 리 없다. 무슨 일을 하든 부처가 될 수 있다면 굳이 평생 고행하며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절대적 경지의 목표에 도달할 일요가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아내와 자식이 있다고 해도 범인의 영역을 벗어나 성인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사실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승려도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아 그를 수 있다.일본인은 영혼과 육체가 서로 상반된다는 설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수행하면서 소박한 생활을 하지만, 남루하고 더러운 옷차림을 하거나 즐거움과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다. 일본의 성인들은 시를 읊고 다도를 즐기며 꽃을 감상하고 달을 보며 세월을 보낸다. 오늘날 불교 선종에서도 신도들이 ‘세 가지 부족’, 즉 옷차림, 먹을 것, 수면의 부족에 시달리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요가수련을 하는 사람은 명상을 통해 초자연적 능력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일본의 선종은 이런 황당한 설법을 전혀 믿지 않는다.” 일본인은 이처럼 요가수행의 각종 관점을 완전히 말살해 버렸다. 그들은 요가를 자기수련을 통해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는 한 수행 방법으로만 간주할 뿐이다. 일본인은 ‘숙달’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인간과 행동 사이에 놓인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그런 장벽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이런 ‘자력갱생’의 방식으로 자기수련을 하고, 그것을 통해 수행을 쌓음으로써 어떤 상황에서도 시기적절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얻었다. 또 분별없이 날뛰는 자아를 통제하고, 어떤 상황이 닥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본의 통치계급은 자신들의 정치와 군사적 목표에 도달하고자 선종의 수행방식으로 사무라이, 정치가, 검객, 대학생을 훈련했다.
일본에서는 고안이 ‘숙련’에 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자신을 잊을 정도로 ‘고안’에 몰두하다 보면 영혼과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보는 나’의 장벽이 제거되고, 섬광처럼 빠른 속도로 영혼과 ‘고안’이 융합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처럼 극도의 긴장감이 도는 심적 상태와 노력에 대해 묘사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 선승의 언행록을 펼쳐 그들이 얻고자 한 진리를 찾아보면 실망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서양인이 보기에 일본인이 이런 신조를 드러내는 가장 극단적인 방식은 ‘죽는 셈치고 사는’ 사람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산송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인은 이런 말을 혐오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에게 이 말은 사람은 이미 죽고 남겨진 것은 오직 생명력을 잃은 육신뿐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 말은 도덕적 수련을 거쳐 ‘숙련’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격려할 때 늘 이 말을 사용한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인은 ‘무가’와 ‘죽은 셈치고 산다’는 행동습관에서 의식을 배제했다.
일본인이 ‘보는 나’로 귀속시키는 ‘수치심’은 일본인을 무겁게 짓누르는 요소이다.
일본의 사회적 풍습과 전통문화에 따르면, 남자는 반드시 아들이 있어야 한다. 아들이 있어야 자신이 죽고 나서 자신의 위패 앞에서 절을 해줄 이가 있고, 가문의 대를 이으며, 가족의 대를 이으며, 가족의 명예와 재산을 지킬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보통 일본의 갓난아기는 걷기보다 말을 먼저 배운다. 엄마들은 아기가 기어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전통적 관습에 따라 일본인은 아기가 만 한 살이 지났을 때 서서 걷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은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돈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이런 청결과 위생을 유지하도록 교육받는다.
일본에서는 다른 집단의 인정을 얻어야만 비로소 자기 집단의 인정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집단의 구성원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거나 비난을 받았다면 그가 속한 집단도 그를 거부하고 벌을 준다. 일본에서는 외부 세계의 인정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인은 천국을 꿈꿀 필요가 없다. 유아기에 이미 천국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유년시절을 거쳤기에 그들은 사람의 본성이 본래 선하고, 모든 신이 자애로우며, 일본인이란 사실이 더없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의 도덕관을 극단으로 내몰기 쉬우며,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있으므로 죽음과 동시에 ‘신’이 된다고 여긴다. 이것이 그들의 고집스러운 자기주장과 자신감의 원천이 되어 자기 능력과 상관없이 무슨 일이든 정면 돌파하는 성향으로 표출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과감히 고수하며 정부 입장에 반대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걸기도 한다. 이런 자신감은 때때로 집단과대망상증을 불러올 수 있다.
일본인은 유년기에 ‘부끄러움을 아는 자아’를 형성하고, 성인이 된 후에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유년기의 순수함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거울은 그들에게 허영심을 키우거나 ‘자아’를 반영하는 존재가 아니라 영혼의 깊은 곳을 비춰주고 ‘영원한 순결을 반영’하며 ‘부끄러운 자아’를 보여주는 존재다. 그들은 거울을 통해 영혼의 ‘창’인 자신의 눈을 보며 ‘부끄러움을 아는 자아’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을 얻는다. 이런 이유로 일본인은 늘 거울을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일본인은 실패가 곧 권위에 대한 배반이라고 보기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에 긴장할 수밖에 없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처리할 수 없는 뜻밖의 상황이 발생하면 두려움을 느낀다.
일본인은 예로부터 자연이 선사하는 즐거움에 심취하기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벚꽃, 달, 국화, 첫눈을 감상하거나 집 안에 곤충집을 매달고 곤충이 우는 소리를 듣거나 시를 쓰거나 정원을 가꾸거나 꽃꽂이 다도를 즐기는 등이 모두 그들의 즐거운 소일거리였다.
1930년대 초반에 일본 흑룡회의 한 지도자가 도쿄의 영자 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사회의 이런 면을 정확하게 꼬집어냈다. “우리 사회는 한쪽 끝을 핀으로 고정해 둔 삼각형과도 같습니다.” 다시 말해 책상 위에 삼각형을 걸어 두면 누구나 삼각형만 볼 뿐 그것을 고정시킨 못은 보지 못한다. 때때로 삼각형은 오른쪽 혹은 왼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삼각형이 숨어 있는 축을 중심으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서양인이 흔히 사용하는 말처럼 모든 일이 ‘거울을 통해’ 행해진다. 일본인은 전제권력이 표면에 드러나는 것을 철저히 방지하고, 그들의 모든 행동이 실권이 없는 상징적 지위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보이도록 노력한다. 만약 그 가면이 벗겨져 권력의 근원이 드러나면 일본인은 고리대금업자나 벼락부자처럼 사리사욕을 채운 착취자로 규정해 그들의 제도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일본인이 평화 국가를 재건하는 동력은 그들의 과거 행동방침이 ‘실패’했다는 것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다른 방향으로 정력을 쏟아 붓는데 있다. 일본인은 쉽게 변한다.~~지금까지 언제든 행동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행동은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기회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만약 상황이 허락된다면 그들은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모색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무장진영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찾을 것이 분명하다.
위의 글은 책을 읽고 책 속의 요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자 루스 베네딕트
- 1887년 뉴욕 출생으로 문화인류학자이자 시인이다. 그녀는 1909년에 배서(Vassar) 여자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19년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해 '미국 문화인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의 지도를 받으며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컬럼비아 대학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그녀는 1927년에 인디안 부락문화를 연구해 《문화의 패턴》을 완성했고, 1940년에는《종족: 과학과 정치》를 발표해 인종차별을 비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네덜란드, 독일, 태국, 일본 등의 민족성을 연구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 연구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컬럼비아 대학에서 계속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48년 61세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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