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채/교리와 성지에 대하여

원불교 전주 교화 역사탐방과 이춘풍선진 집터와 변산제법성지 탐방

소확행희망 2015. 5. 17. 23:16

좌포성지해설사들과 함께 하는 역사탐방

 

 

좌포교당 홍산 박법종교무님과 함께하는 역사기행으로 전주지역의 역사탐방과 변산 이춘풍선진 집터 그리고 변산의 제법성지에서 원불교의 역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1. 전주 물왕멀지역(현 노송동) 최초의 원불교전주출장소지 탐방

 

위치: 전주 물왕멀(전주고 북쪽)지역으로 현재 재개발아파트를 신축하고 있으며 재개발아파트와 경계 부분에 위치해 있다.

 

 

그 당시에는 회관이라 칭했는데 현재 그림의 축대 아래 부분에 회관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옛 회관 자리에는 교회(단독주택지)가 위치해 있다.

새 회상 창립기에 익산총부 건설과 전주지방 교화에 일익을 당당하여 제1대 제1회 1등 유공인의 성적을 나툰 오타원 이청춘(五陀圓 李靑春,1886~1955)대봉도는 전주에서 태어났으며 원기8년 삼타원 최도화의 인도로 입교했으며 대종사님으로부터 청춘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후 대종사를 가까이 모시면서 입선과 청법을  즐기며 수도 정진하여 제1대 제1회 기념총회 때는 1등 유공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대종사께서 원기9년 3월에 7인의 제자를 발기인 삼아 불법연구회 창립을 서둘때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한 제자가 됐다. 원기20년에 대종사의 명으로 전주교화에 나섰는데 사재 1천여 원을 투자해 고향인 전주에 가옥과 기지를 매입하여 전주출장소 간판을 걸고 전주교무로 4년을 활동했다.

 그는 젊어서 비록 인생의 정로에서 벗어난 길을 걸었으나 정로가 아님을 각성한 후로는 용맹있게 금강이도(金剛利刀)로 오욕락과 세속 인연을 단절하고 대 개혁의 생활을 했다. 그런 결단력으로 도문에 입참해서는 변치 않는 신성으로 시종여일하게 수도인의 규칙을 엄수했다. 그는 맹구우목 보다 더 신기하게 대종사를 친견하고 도문에 입참한 후 대종사를 가까이에서 구전심수로 법을 익히며 행복자로 살았다. 원기 40년 전주양로원에서 70세를 일기로 열반하자, 응상 이완철 종사는 추도사를 통해 "전주 이화춘이 변하여 원불교 이청춘이 되었다"며 "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른다더니 속세에 묻혔던 범부가 변하여 보살이 되었다"고 추모했다.

 

 

2. 최초의 전주교당지(현재의 교동교당)

 

 

 

 

 

 

 

 

3. 전주 완산동 전음광 선진의 집

 

원기 9년 (1924) 3월에 대종사는 부안 변산에서 교법을 제정하신 후 교화를 펴실 기지로 정읍 내장사를 계획하고 한 때 머물면서 여러 가지 상황을 보았으나 이 계획이 원만히 진행 되지 않자 다시 전주 완산동 전음광 선생의 집에서 몇몇 제자들을 만났는데 그곳에서 서중안, 송만경, 이청춘, 이청풍, 문정규, 박원석, 전음광 등이 발기인이 되어 불법연구회 창립준비를 논의하였다. 모임에서 회관건립 장소를 이리로 결정하고, 대종사는 제자들과 함께 이리 부근을 답사한 후 박원석의 주선으로 이리역에서 4km 떨어진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에 총부 건설 기지를 정하였다. (원포털에서)

 

전음광선진은 어머니 전삼삼과 함께 만덕산초선에 참여했으며 마령에서 이사하려 할 때 대종사님의 권유로 전주로 이사했다고 한다.

 

 

전주 완산동에 위치한 이곳은 현재 교회가 위치해 있다.(남부시장에서 전주천을 건넌 곳에 위치)

교회이면서도 소박한 전통을 간직한 건물에 그대로 살아 있음이 흥미롭다.

 

 

 

 

 

 

4. 변산의 이춘풍선진 집터

 

위치: 전북 부안군 보안면 신복리 종곡 (부안 청자박물관 근처)

 

 

 

 

훈산 이춘풍(薰山 李春風 1876~1930)은 경상도 유학자로 고종사촌 동생인 정산종사와의 인연으로 새 회상 창업기에소태산 대종사의 제자가 되어, 전무출신 5년의 짧은 경력을 가졌지만, 초기 교단의 교리형성과 훈련 기반을 굳히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대종사의 비중있는 제자로 봉래제법 시절에 가까이서 모신 까닭인지 대종경 서품10,수행품 34, 인도품 55, 변의품 20 등 4군데나 등장한다. 원기 6년 46세 되던 해 음력 9월 1일 고모부 되는 구산 송벽조대희사의 인도로 변산 봉래정사에서 대종사님을 만나 불법의 대의와 인도의 요법을 듣고, 단연 유가의 규모를 벗어나 그 해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이사를 했다. 줄포만 연안 종곡에 살면서 간일(間日)로 내변산 실산초당의 스승을 찾아 법을 묻고 그 가르침에 도취하였다. 부안군 보안면 신복리 중곡은 변산으로 드는 초입에 있는 마을이다. 영광.변산간 노정의 유숙처로 맞은 위치에 있었다. 훈산 일가는 영산과 변산을 내왕하는 대종사와 그 제자들의 시봉을 맡는 한편, 종곡 사가와 실상초당을 왕래하며 대종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향타원 이경순 종사와 그 아우인 달타원 이정화 선생은 그의 딸들이다.

 

이춘풍선생의 집은 대종사께서 봉래정사 석두암에 머무실때 까지 종곡에 사시다가 대종사께서 석두암을 떠나자 그 곳으로 이사하여 석두암을 보호하였다 한다.

 

 

 

 

 

5. 변산 원광선원

 

 

 

 

 

 

 

 

 

 

 

 

6. 변산제법성지(봉래정사, 석두암)

 

 

원불교의 교법을 만드신 곳 변산 제법성지

 

인장바위의 모습

석두암터를 오르며

 

 

석두암터에서 우측으로 200여미터를 돌면 샘물을 길었던 우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주산종사께서 어린시절 출가하기 위해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물을 뜨러 갔다 찾잔을 깨뜨려 어찌할 줄 몰라 집으로 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대종사님께서 오셔서 집으로 가셨다합니다. 후일 대종사께서는 학인들에게 모든 일을 도성(주산 송도성)이 깨진 잔 귀 붙이듯 하라고 하셨다합니다.

봉래정사 앞에서

 

 

 

원불교의 역사에 중요한 사적지를 함께 해주시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신 홍산 박법종교무님께 감사드립니다.

의미 깊은 역사탐방의 자리에 함께 한 교도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원기100년 5월 17일

 

동산교당 최도근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