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개교표어[開敎標語]
개요
원불교의 개교정신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표어로 ‘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이다.
소태산대종사 (박중빈 朴重彬 , 이하 소태산) 는 대각 후 당시 시국을 살펴보고 그 지도강령을 표어로 정한 것이며, 이는 《정전》 ‘개교의 동기’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개벽의 의미
소태산은 현실적 고해의 모든 원인이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정신개벽은 후천시대의 이상을 설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상의 목적지는 낙원세계요, 그에 이르는 방법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해서이다. “사람의 정신이 능히 만물을 지배하고 인의의 대도가 세상에 서게 되는 것은 이치의 당연함이어늘 근래에 그 주체가 위(位)를 잃고 권모술수가 세상에 횡행하여 대도가 크게 어지러운지라”(《대종경》 서품5)고 했다.
사람이 주체가 되어 만물을 살려 쓰고 사람의 정신이 주체가 되어 물질을 선용하자는 것이며, 또 소태산은 “안으로 정신문명을 촉진하여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하여 결함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대종경》 교의품31)라고 했다.
소태산에 있어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은 같은 뜻이며, 정신문명과 도학문명은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소태산은 과학문명만 일방적으로 발달해서는 안되며, 또한 도학문명만 일방적으로 발달되어서도 안 된다고 보았다. 인류의 문명은 내외가 겸전되고 영육이 쌍전되어야 균형 잡힌 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질에만 치우친 발전은 정신 세력의 쇠퇴와 물질에의 노예화 현상을 야기시키며, 그로 인해 이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심각한 파란고해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소태산은 이것이 인류가 불행하게 된 원인이라고 진단했으며, 이를 극복하고 주종과 선후가 그 위치를 바로 찾아 무량한 낙원건설을 위해서는 정신개벽이 시급하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잘살기 위해 정신개벽은 꼭 필요하며, 이러한 후천개벽의 이상은 도학문명을 주(主)로 하고 물질문명을 종(從)으로 병진해 나갈 때 원만평등한 낙원인 ‘하나의 세계’가 건설된다는 것이다.
개교표어의 대의
개교표어의 대의는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참다운 문명발전이다. 문명발전의 측면은 정신문명인 도학을 발전시켜 도학문명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물질문명인 과학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둘째, 인간 정신의 주체성 확립이다. 주체성 확립의 측면은 물질의 욕망에서 벗어나 정신의 자주성을 확립하여 물질을 선용하자는 것이다. 과학문명과 도학문명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과학문명의 장점은 인간생활에 필요한 여러 기물을 만들어 생활을 편리하게 했으며, 우주를 정복하여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게 했다. 사ㆍ농ㆍ공ㆍ상에 대한 학식과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켜 보다 많은 이익을 얻게 했으며, 실증적 근거 제시와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는 능동성을 일깨워 주었다. 과학문명의 단점은 최고도의 살인무기의 개발로 인류가 멸망케 되는 우려를 낳게 했으며, 과학문명의 부작용으로 사치와 방탕과 범죄와 질서문란 등으로 사회혼란을 야기시켰다. 물질이 풍성함에 따라 물질에 대한 욕망을 가중시켰으며 향락에 의한 정신갈등과 도덕윤리가 부패했으며 물질만을 중심으로 하여 가치관의 타락 등을 일으켰다.
이에 대하여 도학문명의 장점은 정법(正法)의 종교단체ㆍ도덕단체ㆍ자선단체 등이 인간의 올바른 정신을 이끌어왔으며 도의(道義)를 강조하는 교육이 도덕세계 건설을 지향해 왔다. 수도(修道)를 통하여 심오한 진리를 탐구케 했으며 진리적 인격 창조에 노력해 왔다. 도학문명의 단점은 도학문명의 일방적 편중으로 과학문명의 발달을 위축시켜 왔으며 출세간적으로 고요함을 중시하여 현실도피의 우려가 있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있어온 도학문명과 과학문명은 각각의 장단점을 내포하고 있으나, 문제는 이들이 서로 겸전되고 병진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절름발이 문명을 지양해서 원만평등한 내외겸전의 과학과 도학을 병진시키자는 것이 소태산의 새 종교 창립의 의지였던 것이다.
개교표어와 영육쌍전
소태산은 “세상 사람들이 물질문명과 도덕문명의 두 가지 혜택으로 그 생활에 한없는 편리와 이익을 받게 되나니, 여러 발명가와 도덕가에게 늘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나니라. 그러나 물질문명은 주로 육신생활에 편리를 주는 것이므로 그 공효가 바로 현상에 나타나기는 하나 그 공덕에 국한이 있으며 도덕문명은 원래 형상 없는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므로 그 공효가 더디기는 하나 그 공덕에 국한이 없나니 제생의세하는 위대한 힘이 어찌 물질문명에 비할 것이며 그 광명이 어찌 한세상에 그치고 말 것이리요”(《대종경》 교의품32)라고 했다.
또 대산종사는 “물질개벽은 의식주라는 생활개선을 통하여 일생의 신(身)낙원을 이루는 것이며 정신개벽은 도학인 삼학팔조로 마음을 개조하여 영생의 심(心)낙원을 이루는 것이다”(《정전대의》)라고 했다. 도학문명이 주라면 물질문명은 종이며, 도학문명이 영(靈)적이라면 물질문명은 육(肉)적이라고 하는 주장인 것이다. 정신개벽은 원불교 개교이념임과 동시에 원불교 교단사의 발전에 영원히 변치 않을 교단적 핵심과제요, 구심점이다.
어느 시대를 통해서도 정신과 물질의 쌍전된 시대는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특히 소태산의 탄생과 대각의 시기는 격동의 시기요 과도기였다. 따라서 인류의 나아가야할 바 방향이 제시되고 인간의 삶의 방향이 설정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이었다. 과학은 급속도로 발전되어 가고 도학은 퇴보일로에 놓여 있어 불안과 절망으로 자기 소외와 사회 갈등이 어느 시대보다도 심각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를 소태산은 세계 인류가 고해에서 헤매는 위기의 시대라고 인식했으며, 이에 소태산이 제창한 제생의세의 경륜과 정신개벽운동은 인류의 시대적 소명이었고 역사적 필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신개벽운동은 당시에만 적용되는 특정시기의 일시적 도덕운동이 아니었다. 인류 역사가 진행되는 한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 간직하고 보전되어 후손만대에 전승해주어야 할 인류정신문화의 꽃이요, 핵이다. 그것은 바로 인류가 생존하는 한 과학문명은 더욱 발전할 것이며 인간의 정신문명은 거기에 따라갈 만큼 성장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사회가 혼탁하고 병이 들었으니 마땅한 치료제와 처방이 필요하며, 그 치료제는 원불교의 교리요 처방전은 정신개벽이며, 이 처방전이 바로 ‘개교표어’이다. 개벽이란 원래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린다는 뜻으로, 한국 최근세 종교사상에서 개벽사상이 일어나게 된다. 소태산은 개벽이라는 말을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개벽으로 보았다.
인간주체의 개벽사상
개벽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요, 지금까지 있었던 우주의 질서나 세계의 질서가 크게 바뀌는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주체와 종속의 질서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선천시대는 하늘(天)이라는 절대자가 주체가 되고 사람은 종속의 의미를 가져서, 사람은 하늘의 도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했으며, 구경에는 하늘을 주체로 해서 하늘과 일치(天人合一)해야 한다고 했다. 유교가 이러한 입장이다.
그러나 동학을 기점으로 한 후천개벽사상에서는 하늘과 사람의 주체와 종속 관계가 정반대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주체가 되고 하늘이 종속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늘의 도를 체받기는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하늘의 도가 인간을 통해야만 실현될 수 있다는 논리로 변화되는 것이다. 동학의 최시형(海月崔時亨)은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 했으며(《천도교경전》), 강일순(甑山姜一淳)은 “선천에는 모사는 재인하고 성사는 재천이라 했으나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대순전경》)고 하여 사람이 하늘 위에 있다고 했다. 사람을 하늘보다 더 소중하게 하라는 것이며, 이러한 후천개벽의 정신과 전개는 소태산으로 이어진다.
“김기천이 여쭙기를 ‘선지자들이 말씀하신 후천개벽의 순서를 날이 새는 것에 비유한다면 수운 선생의 행적은 세상이 깊이 잠든 가운데 첫 새벽의 소식을 먼저 알리신 것이요, 증산 선생의 행적은 그 다음 소식을 알리신 것이요, 대종사께서는 날이 차차 밝으매 그 일을 시작한 것이라 하오면 어떠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럴듯하니라’ 이호춘이 다시 여쭙기를 ‘그 일을 또한 일 년 농사에 비유한다면 수운선생은 해동이 되니 농사지을 준비를 하라 하신 것이요 증산선생은 농력의 절후를 일러준 것이요 대종사께서는 직접으로 농사법을 지도하신 것이라 하오면 어떠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또한 그럴 듯하니라’”(《대종경》 변의품32)고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소태산은 동학이 후천개벽의 시작이요, 증산사상은 후천개벽의 준비를 한 것이며, 원불교는 후천개벽의 일을 직접 실행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소태산의 후천개벽의 원리는 하늘보다 사람을 주체로 하는 것이다. ‘내가 곧 천지일 것이며’(《정전》 천지은)라 했으니, 사람이 곧 천지(하늘)라는 것이다. 이것은 유교의 하늘을 주체로 하는 천인합일의 사상을 넘어서, 최제우나 강일순과 같이 사람을 주체로 하는 논리인 것이다.
“천지에 아무리 무궁한 이치가 있고 위력이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그 도를 보아다가 쓰지 아니하면 천지는 한 빈 껍질에 불과할 것이어늘 사람이 그 도를 보아다가 각자의 도구같이 쓰게 되므로 사람은 천지의 주인이요 만물의 영장이라 하나니라. 사람이 천지의 할 일을 다 못하고 천지가 또한 사람의 할 일을 다 못한다 할지라도 천지는 사리간에 사람에게 이용되므로 천조의 대소유무를 원만히 깨달아서 천도를 뜻대로 잡아 쓰는 불보살들은 곧 삼계(天地人)의 대권을 행사함이니 미래에는 천권(天權)보다 인권(人權)을 더 존중할 것이며 불보살들의 크신 권능을 만인이 다 같이 숭배하리라”(《대종경》 불지품13)고 했다.
이것도 또한 하늘보다 사람이 주체라는 것으로, 사람이 주체가 되어 하늘의 도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더욱 사람은 하늘의 도를 각자의 도구같이 쓴다고 했으니, 천지는 사리간에 사람에게 이용되는 것으로, 이것은 천지보다 사람이 주체라는 것을 강력히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천도를 뜻대로 잡아 쓰는 불보살들은 천ㆍ지ㆍ인 삼계의 대권을 행사하는 것이며, 미래에는 천권보다 인권을 더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는 밖에 있는 어떠한 과학문명도 사람을 중심한 도학문명이 주체가 되어 자유자재로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태산의 큰 뜻이 담겨 있다.
개교표어의 의의
현대사회는 과학문명이 일방적으로 발달되어 왔고 또 발달되어가고 있으니 도학문명을 더욱 발전시켜서 과학문명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원불교가 창립될 당시의 과학문명만 해도 엄청나게 발전된 문명이었으나 그러한 문명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소태산은 예견했다. 그래서 소태산은 “어린아이에게 칼을 들려준 것 같다”(《대종경》 교의품31)고 했다. 인류는 언제 과학문명을 잘못 사용하여 멸망에 봉착할지 알 수 없으며, 앞으로 과학문명이 발달되면 될수록 인류멸망의 위기는 심각해질 것이라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도로 발달된 도학문명이 요구되는 것이다. 다만 도학문명만 발달시키고 과학문명을 소홀히 해도 안 될 것이다. 동양이나 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중세까지는 정신문명을 중시하고 과학문명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느 경우에는 과학문명을 적대시하여 말살하려고까지 했다. 중국에서 한(漢)나라 때 최초로 종이를 발명한 것이나, 한국에서 목판인쇄술을 최초로 발명한 것 등이 있었으나, 조선조의 잘못된 반상(班常) 차별로 인하여 과학을 소홀히 하는 경향으로 치우쳐 갔다. 이는 과학문명을 정신문명에 대립시켜 정신문명이 과학문명을 소홀히 하는 잘못된 역사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과학문명이 더욱 발전해 갈 것이다. 다만 이처럼 과학문명이 발전하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나,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을 도학문명이 주체가 되어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문제이다. 따라서 원불교의 사명은 과학문명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며, 과학문명이 발전되는 것을 제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문명이 올바로 발전할 수 있도록 바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韓正釋〉
<<자료출처: 원불교대사전에서 가져 옴.>>
정전(正典) 제1 총서편(總序編) 제1장 개교의 동기(開敎-動機)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 고해(波瀾苦海)가 없으리요. 그러므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樂園)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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