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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단 교화에 대하여- 좌산 이광정 상사님
(원불교 교화대불공 유튜브 법문 정리)
1. 교화단의 의미
교화단은 대종사님의 경륜을 평면적으로 무한 확산과 수직적으로 상승시키려는 것을 교화단을 통해서 이루실려는 뜻이다, 대종사님의 대자대비의 품이 교화단이라는 정신적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2. 교화단의 필요성
우리의 인성은 관리를 하면 향상되나 방치해 버리면 묵정밭이 되어 결국 재앙의 씨앗이 되기 때문에 교화단을 통해서 인성관리를 하자는 것. 단체라는 것은 조직을 통해서 응집력을 구축해야지 방임해버리면 응집력도 생기지 않고 어려움이 따른다. 관리를 통해 응집력을 키워야 할 곳이 교화단이다. 점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3. 현장의 교화단 정착 방안
현장에서 교화가 살아나야 한다. 교화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조직, 활동, 훈련의 세 가지(삼박자)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삼박자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화단 활동하면서 세 가지 욕구충족을 시켜야 교화단이 잘 될 수 있다. 기쁨욕구, 보람욕구, 유익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서로서로 격려해주고 걱정해주고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는 교화단회가 되어야 한다.
4. 교화단 체제 및 활동문제
숙제 두가지- 평면적 확산문제, 단원들의 의식을 업그레이드하는 문제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상위하달, 하위상달이 잘되어 단원들의 의견 청취하고 의견 등을 사장 시키지 않고 보고해야 할 것이며 단원 상호간 애경사 활동을 통해 수행상 신앙상 가정문제나 직장문제 등을 단회에다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단회에서 업장도 녹아난다.
5. 미래 현장에서의 교화단의 나아갈 방향
공부상 사업상 생활상 문제들을 단회 활동을 통해 개선(개혁)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믿음의 세계 정화, 행동의 세계 정화, 사고의 세계를 정화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원간 자비를 상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번뇌가 보리로 바뀌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6. 교단 내의 교화단이 나가야 할 방향은?
첫째, 교화단의 적응 자세가 부족하다. 단회 참석을 귀찮아 하지 않고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숙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화단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줘야 한다. 교화단이 대자대비의 품안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고 교화단을 통해 대종사님의 낙원세계건설의 이상이 실현할 수 있는 현장임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둘째, 교화단 활동력을 신장 시켜야 한다. 누구든 공부, 사업간에 활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단원 간 조언 충고를 통해 업장을 녹이는 용광로가 되어야 한다.
셋째, 교화단 관리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단원 관리 역량을 신장시켜줘야 하며 단장이나 단원들에게 교화단 활동이 교법실현의 현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교법을 현실에서 구현해내는 곳이 교화단이 되어야 한다.
온 세상의 희망은 교화단의 성패에 있다.
교화단의 희망도 여기에 있다. 단원의 희망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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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단 [敎化團]
개요
단원들의 공부와 사업을 지도함에 있어서 원활하고 효율적인 교화와 일관되고 통일적인 교당 및 교단 운영을 위하여 열 사람을 표준 단위로 구성된 조직. 단장(團長) 1인, 중앙(中央) 1인, 단원(團員) 8인을 기본으로 10인 1단으로 구성하되, 단장은 매월 단회를 통해 단원들의 상시공부를 점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과 교화ㆍ교육ㆍ자선의 사업 방향을 일관성 있게 지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교화와 교단 통치의 원활을 도모하고자 한다.
유래와 변천
교화단은 기본적으로 시방세계를 응하여 조직된 것으로 단장은 하늘, 중앙은 땅, 단원은 8방(乾ㆍ艮ㆍ坎ㆍ震ㆍ巽ㆍ零ㆍ坤ㆍ兌)을 응한 것으로 “펴서 말하면 이 단이 곧 시방을 대표하고 거두어 말하면 시방을 곧 한 몸에 합한 이치”(《대종경》 서품6)가 담겨 있다. 최초 조단(組團)은 소태산대종사의 대각 이듬해인 1917년(원기2) 7월 26일(음)에 진행되었는데, 당시 단장에 소태산, 단원에 이재풍(재철)ㆍ이인명(순순), 김성구(기천)ㆍ오재겸(창건)ㆍ박경문(세철)ㆍ박한석(동국)ㆍ유성국(건)ㆍ김성섭(광선)이었으며, 중앙은 공석으로 두었다가 1년 후 정산종사가 선임되었다.
처음부터 10인을 1단으로 하는 단 조직의 기본 원리와 1인(단장)이 9인(단원)을 지도한다는 단 운영의 기본 원리가 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최초 단 활동으로는 예회와 성계명시독 등을 통한 단원들의 공부는 물론 금주단연 허례폐지 등을 통한 저축조합운동, 버려진 갯벌에 언(堰)을 막는 방언공사, 법계의 인증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 혈인기도 등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변산에서는 조단 교화를 위한 시험기로서 1921년(원기6) 6월에 영광지방 남자 1단, 8월에 영광ㆍ김제ㆍ전주 등지를 합하여 남자 1단, 여자 1단을 조직을 시도한 바 있다.
본격적인 조단은 익산에 ‘불법연구회’를 공개한 이후에 진행되는데, 이 시기에 적어도 4차에 걸친 조단이 소태산에 의해 단행되고 있다. 제1회 조단은 1924년 이후 진행되어 1928년(원기13) 7월 26일(음)까지의 조직으로 이 시기에는 중앙대표와 8인 단원으로 단이 구성되고 있으며, 단장이 없이 9인으로 단을 구성했다. 훈련을 통한 단장의 양성이 충분치 않았던 과도기적인 모습을 띄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부터 회원들의 처지와 발원에 따라 전무출신실행단ㆍ(전무출신)기성단ㆍ거진출진단ㆍ보통단으로 단이 분화되어 조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후 1928년 7월 26일 단행된 제2회 조단에서 각장(角長) 29인과 각장을 단원으로 하는 항장(亢長) 3인 등 32명의 단장이 등장하고 있어 다수의 단장이 배출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월말통신》 제6호) 제3회 조단은 1930년(원기15) 2월에 착수했는데, 단의 종류에 있어서 전무출신실행단을 갑종과 을종으로 구분하여 조직했고, 3개의 단장단(團長團)을 두어 단장단회를 별도로 진행함으로써 이후 수위단을 중심으로 하는 단 조직 체계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1931년(원기16)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의 발간과 더불어 제4회 조단이 진행되면서 비로소 정수위단(正首位團)이 공식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정수위단으로 남자정수위단과 함께 여자정수위단의 조직이 명시되고 있으며, 예비수위단의 경우도 갑, 을, 병의 3종을 구분하여 조직되도록 하고 있다. 이후 단 조직은 《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에 따라 조직위원회(수위단의 경우)와 교무부를 통해 진행된다. 단의 공식 명칭으로 교화단(敎化團)이 사용되기 이전에는 이를 ‘교육통일의 기관’(《시창13년 사업보고서》) 또는 ‘통치기관’(《불법연구회통치조단규약》)으로 부르기도 했다. 여기서 ‘통치’는 공부와 사업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고 감독한다는 의미로 당시 단이 교육기관과 사업기관의 기능을 함께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교화단’이란 명칭은 1942년(원기27)에 간행된 《불법연구회회규(佛法硏究會會規)》에서 공식 등장하는데, 1941년(원기26) 《시창26년 사업보고서》에서도 ‘의무교화단(義務敎化團)’이란 명칭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1941년경에는 ‘교화단’이란 표현이 공식화된 것으로 보인다. 1945년(원기30) 일제에 의해 교화단 조직이 금지(《원불교교사》 제2편 제5장)되었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기존의 단 조직이 와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55년(원기40)에 개교40년 축하식에서 4종의무 강조를 통해 교화단 활동이 재정비되기 시작했고, 1963년(원기48) 개교반백년기념대회를 앞두고 교화 3대목표의 하나로 ‘교화단 불리기’ 운동이 전개됨에 따라 교화단이 크게 활성화되었다. 현행 《원불교교헌》에서 “교화와 통치의 양면의 원활을 기하기 위해 십인일단의 교화단을 조직”한다고 명시한 바와 같이 오늘날 교화단은 원불교 교단의 최고결의기관의 위상을 가지는 수위단으로부터 출가교화단 및 각 교당의 교화단에 이르기까지 교단 조직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주요활동과 역할
매월 단회를 통해 단원들의 공부와 사업을 지도 감독하는데, 불법연구회 이후 단회를 통해 일기성적조사법 및 유무념대조법 등 상시공부의 점검이 실시되었으며, 공부ㆍ생활ㆍ사업 방면의 의견안 제출 등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단규강습 등 단에 대한 교육과 의견제출에 의해 제안된 농업부 창립사업과 인재양성소 창립사업에 각 단들이 연합하여 가담함으로써 이른바 단의 주요 활동이 되기도 했다.
불법연구회가 출범함과 동시에 단 활동의 주관부서인 교무부 신설을 비롯하여 상시훈련법 제정, 수위단의 정비 등을 통해 단 조직은 더욱 체계를 잡아가게 되는데, 특히 교무부는 불법연구회 시기(1924~1935)의 주무부서로서 회원들의 교육과 훈련, 단 관련 업무를 주로 담당했으며, 상시훈련법에는 ‘교무부에 와서 하는 책임 6조’를 통해 일상에서 공부하고 사업하는 과정에 교무와 단장을 통한 체계적인 지도를 받도록 했다. 1917년 최초 수위단을 다시 정비하여 이후 최고결의기관으로까지 그 위상을 높임으로써 단을 통해 교단을 다스린다는 이단치교(以團治敎)의 전통을 확립했다. 이후 수위단 및 출가교화단은 수위단사무처에서, 각 교당의 교화단(재가)의 업무는 교화훈련부에서 각각 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교화단은 “오직 한 스승의 가르침으로 모든 사람을 고루 훈련할 빠른 방법”(《대종경》 서품6)으로서 1인의 단장이 9인의 단원을 교화함과 동시에 단원들이 일심합력하여 교화ㆍ교육ㆍ자선 등 교단의 3대사업에 동참하자는 것이며, 나아가 공부ㆍ생활ㆍ사업 방면의 의견제출과 상단(上團)의 의견심의를 거쳐 수위단의 최종결의에 이르기까지 교단 구성원의 공의(公議)를 수렴하고 상통하달(上通下達)의 원활한 의사소통체계를 통해 공화제도(共和制度)를 정착함으로써 단을 통한 교화와 통치에 합리적인 종교운영의 전통을 구현하려는 취지가 담겨 있다. 〈張眞修〉 교화단 자료--원불교대사전에서 가져온 자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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