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봉의 국악성지와 황산대첩비지를 가다. 2014
형제들 모임인데 태풍이 와서 물놀이도 못하고 가까운 곳에 바람쐬러 간 곳이 국악성지와 황산대첩비지였다.
국악성지는 운봉의 황산 아래 조성된 공간인데 무언가하고 구경하러 갔는데 그 곳에 근무하시는 분께서 해박한 역사적 지식으로 황산대첩비와 국악성지조성의 내력 등을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어느 때보다도 운봉이라는 지역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황산대첩과 이성계장군에 대한 얘기 등>
많은 걸 얘기해 주셔서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곳 운봉은 3천의 조선군이 4만의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 이성계장군이 이곳에서 대 승리를 거둔 곳이다. 왜군들은 진포(군산)에서 대패한 뒤 경상도 쪽을 거쳐 운봉과 인월쪽으로 집결해 있어서 그 당시에는 한 해 500여 차례 조선을 침입해 올 정도로 빈번히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아 그 당시 백성들의 고통이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왜군을 물리쳐 불과 십수명의 왜군들만 도망쳤다 하니 실로 대단한 싸움이 아닐 수 없다. 운봉과 인월 사이에는 피바위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 그 피가 바위에 물이 들 정도여서 피바위로 불리고 있다 한다. 이성계 장군은 화살 쏘는 솜씨가 기가 막힐 정도여서 왜장 아지발도(짐승을 말하는 아지와 철모르고 날뛰는 몽고말 발도를 합해서 그 당시 백성들이 붙인 이름이라 함)를 활로 죽임으로써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이성계장군이 활을 쏴서 투구를 벗기자 이지란이가 얼굴을 맞혀 죽였다 한다. 이 싸움의 승리로 결국 조선을 개국하는 길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전쟁 당시 왜군이 운봉이 주둔할 때 운봉은 지명 그대로 구름과 안개가 가득한 곳이라 적들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성계 장군은 곧바로 싸움을 시작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때를 기다려 적을 공격했는데 운봉의 안개를 남원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인월쪽의 달의 기운으로 인하여 운봉의 안개를 걷혀버리고 적을 섬멸 할 수 있었다 합니다.
그 뒤 인월이라는 지명이 생겼는데 끌(인)자에 달(월)자로 달을 끌어와 전쟁을 승리한 이성계 장군의 대승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합니다. 그 밖에 마애불과 마애서(바위에 판판하게 새긴 글로 운봉을 올라오는 길목에 위치한다 함./2명의 왕이 날 것이라는 예견이 적혀 있다 한다, 한명은 이성계 또 한명은?)와 관련한 얘기와 조상들이 이 싸움을 미리 예견한 듯 미리 명심하고 주의할 점을 암시해주는 것과 이를 잘 활용한 이성계장군의 지혜 등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대단한 승전이 아닐 수 없다. 모르고 보는 것과 알고 생각해 볼때 느낌이 사뭇 다름을 생각할 때 마치 큰 비밀을 전수받은 느낌이었다. 이성계장군과 오목대와 얽힌 이야기 등 이 지역에 살고 있지만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이야기 들을 접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 밖에 국악과 관련한 얘기와 성지조성 내력 등 국악성지에 근무하시며 한시간이 넘도록 열강으로 해설을 해주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친절하게도 단체 사진까지 찍어 주시고 메일로 보내 주시는 친절까지 베푸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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