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책읽기와 감상

인과의 세계를 읽고[저자: 김중묵]

소확행희망 2011. 7. 23. 11:59

인과설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성자들은 왜 인과의 진리를 얘기하고 계신가? 과학문명이 발달된 오늘날에 있어서 그동안 상상 속으로만 가정적으로 생각하여 왔던 일들이 많은 부분 인간의 사실적인 관찰로 기정 사실화 (우주, 생명 등)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과학의 지식과 영혼이나 내세, 인과의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 상반되어 믿음을 약화시키는 점이 없지 아니하였다. 이책은 우리가 마음의 내면에 인과에 대해 의심할 수 있는 사항들을 하나씩 풀어 가면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마치 교리공부의 훌륭한 참고서 같기도 하다.

 

책에 나온 글들을 통해 인과의 세계를 들여다 본다.

인과설이란 성자들이 어리석은 중생들을 제도하기위한 방편으로 설하신 것에 불과한 것인가?

 

인간의 영혼문제, 내생문제를 과학자들의 이론과 주장만 듣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자동차에 고장이 났는데 농부에게 가서 물어본 것과 다름이 없다. 네가 영혼문제를 알려고 생각한다면 부처님에게 물어보아야한다. 부처님께서는 시공을 초월하는 혜안과 지견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아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정산종사-

(과학자들의 이론과 주장만 믿고 또는 내가 아는 지식만으로 인과의 문제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육도 윤회는? 천도, 인도, 아귀, 축생, 수라, 지옥  우리의 내생도 이처럼 진급이 되기도 하고 강급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하기만 하면 다 이루어지는 줄 알지만 복 받을 일을 지으면서 기도를 하여야 복이 돌아오는 것이지 하는 행동은 벌 받을 짓을 하면서 복 받겠다고 천일기도를 해보아도 복은 돌아오지 않는것이다.(이것이 인과인가?)

 

사람들이 악업을 짓는 이유는 자기 이로움에 빠지거나 자기 생명의 보존 욕심, 찰나적인 향락, 편리하고 편리함을 좇아가는 삶, 하고 싶은 습성 때문이다.(이 글로 볼때 인과를 믿는 이유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향락, 편리만을 추구하지 않고 선하게 살고자 하는 데 있는것 같다.)

 

업은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아야 하는 것, 즉 자업자득이다.

 

만물의 인과 보복 되는 것이 현생 일은 서로 알고 실행되려니와 후생 일은 숙명이 이미 매하여서 피차가 알지 못하거니 어떻게 보복이 되는가(의두요목)  이에 대한 답으로 부처님께서는 [업의 상속자가 각자니 스스로 업을 지은 연고]라고 답하고 있다. 각자 각자가 스스로 업에 따라 그 상속을 스스로 받게 되는 연유로 사람들의 천처만별의 차별과 구분이 있게 되는 원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인과보응의 원리임을 강조하시고「정당한 법을 가지고 자비 제도하시는 부처님의 능력으로도 정업(定業)을 상쇄(相殺)하지는 못하고, 아무리 미천한 중생이라도 죄로 복이 상쇄되지는 아니하나니라. 그러나, 능력 있는 불보살들은 여러 생에 받을 과보라도 단생에 줄여서 받을 수는 있으나 아주 없애는 수는 없나니라.」인과품8장.

「남이 지은 죄복을 제가 대신 받아 올 수도 없고, 제가 지은 죄복을 남이 대신 받아갈 수도 없나니라.」인과품 7장과 같이 인과보응의 이치를 분명히 밝히고 계신다.)

 

업이라는 것은 실물과 같고 몸이라는 것은 실물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마음은 실물이고 말은 그림자인 것이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그 말이 표현되는 것이므로 마음이 근본이 된다. 마음은 업이 근본이므로 모든 것은 마음이 들어서 짓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한마디, 행동하나,마음가짐 하나가 바로 상생이 되고 상극이 되기 때문에 한시도 방심할 수 없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마음 한 번 쓰는 것이 천년 원(怨)으로 맺어지기도 한다.

 

상극을 상생으로 돌리는 방법

 1. 피경음조(避境陰助)--보면 서로 속이 상하고 미운 마음이 들어 기운이 막히니 그 자리를 피하고 상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주며 내가 선의로 도와주었지만 상대방의 마음에 미움이 남아있어 오해할 수도 있으니 상대방 몰래 도와주고 보살펴 주면 상생의 관계로 돌아서게 된다.

 2. 감수불보(甘受不報)--빚을 갚으면 빚 독촉이 없어지고 그릇이 가득차면 더 채울 것이 없듯이 상극의 관계도 상대방이 나에게 미워하고 못 감당할 일을 저질러도 상대심을 놓고 나는 풀어 버릴 일을 하면서 참고 견디면 상대방이 자연히 돌아서서 결국 상생의 관계가 된다.

 3.전극상생(轉克相生)--밉고 싫은 사람을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돌려 은혜스럽고 감사하게 여겨 상생으로 만드는 것이다.

 

상생의 좋은 관계를 오래가게 하는 방법

 1.교례상경(交禮相敬)--일상생활을 해 가면서 아무리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도 예의로써 대하며 서로 공경해야 서로 허물이 드러나지 않고 좋은 관계로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다.

 2.진퇴적중(進退適中)--물러설 자리에서 물러설 줄 알고 나아갈 자리에서 나아갈 줄 알아야 좋은 관계가 맺어지며 오래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3.재물과 금전 거래를 분명히 해야 한다.

 4.선고충언(善告忠言)--진실로 충고하여 줄 수 있고 충고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서로 허물을 고치며 오랜 선연이 될 것이고 친근자 된 책임과 도리를 다하게 될 것이다.

 5. 겸양하고 나를 낮추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가 지금 처한 처지가 너무나 인덕이 없고 박덕하여 내 자녀 이웃 친척들로부터 한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할지라도 그 고통 받는 환경을 감수불보(甘受不報)하면서 꾸준히 사랑과 관용과 은덕을 베풀면 결국 좋은 환경이 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태도로 생활하여야 이것이 무주상보시요 무루복을 짓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깊은 산 궁곡에 피어 있는 꽃(생명)은 다른 조물주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꽃 자체가 제 스스로 피었고, 나무구멍이나 숲 속에 사는 새나 벌레(의식) 역시 누가 따로 피우고 살리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창조하면서 사는 것이다.   (스스로 피었고 스스로 창조하면서 사는 것이 인과라 합니다. 인과의 원리를 알아야 신(信)이 나오고 인과의 원리를 알아야 견성할 수 있다 합니다.)

 

천지의 식(識)은 사람의 희로애락과 같지 않은 식이니 곧 무념 가운데 행하는 식이며 상없는 가운데 나타나는 식이며 공정하고 원만하여 사사가 없는 식이라,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천지의 밝음을 두려워하여 어떠한 경계를 당할지라도 감히 양심을 속여 죄를 범하지 못하며, 한걸음 나아가 천지의 식을 체받은 사람은 무량청정한 식을 얻어 천지의 위력을 능히 임으로 시행하는 수도 있나니라.

 

많은 사람들이 선(善)이 좋은 줄은 아면서도 실천하지 아니하고 악(惡)이 그른 불은 알면서도 제거하지 못하며 즐거운 낙(樂)은 좋아하면서도 낙 받을 일은 아니하고 괴로운 고(苦)는 싫어하면서도 고될 일은 스스로 장만한다.

 

 

참 보감이 되고 인생을 살면서 꼭 유의해야 할 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과란 무엇이며 인과를 믿고 어떻게 좋은 선연을 쌓아나가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일원상서원문에서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이라고 밝힌 바와 같이 일원상을 체받고 삼학공부를 열심히 해서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과보응의 원리를 알고 실천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그동안 경전에서 보아왔던 것들의 경지가 넓어진듯합니다. 책을 추천해 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른 교도님들에게도 꼭 일독해보실 것을 권해봅니다.

 

2011.7. 최도근

 

 

 

 

<책 쓰신 분은,--원불교 죽전 교당 자료에서>  교법으로 인격이룬 인물  ②

양산 김중묵 종사  

(1920~1998)  


 

무심도인 무애도인

양산 김중묵 종사는 1920년 김제 출생으로 원기26년 출가해 화해 익산 남원교당 교무와 총부 교화부장과 총무부장으로 봉직했다. 원기57년부터는 순교감으로 활동하며 전국 각 교당에 법풍을 일으켰다.

원기64년에는 인과설을 집대성하여  I인과의 세계 J를 저술 발간했으며, 인과의 진리에 관한 교리로 수백회의 훈련과 49재, 법회를 열었다.

일생을 걸림없고, 막힘없는 무심도인 무애도인의 삶을 살았다.

 

무심한 가운데 유심한 심법

양산종사의 일화 가운데 건망증에 관한 것이 많다. 주로 49재 약속을 잊었다거나 깜박 조는 사이 임피에 내려야 하는데 군산까지 갔다가 다시 왔다거나 하는 일화 등이다.

어느 해 여름 삼천포교당에서 지내면서 해수욕을 하고 강습을 나신 일도 있었는데 그해 가을 그 교당 교무가 훈련차 총부에 와서 양산님 방을 찾아가 인사를 드리니 “아 자네가 어디 교당에 있더라”하더라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소일담으로 오르내리곤 했다.

하나 양산종사는 그렇게 무심한 중에도 동지간이나 후진들 중에 챙겨야 할 일이 생기면 알뜰하게 살펴주었다. 그 챙김이 아주 간절하고 자상해서 어려운 곳에 근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버이 같은 정을 느끼게 했다.

 

중묵(重默)에서 중묵(中默)으로  

대종사는 총부를 찾아온 양산종사에게 재주에 치우칠까 경계하여 중묵(重默)이란 법명을 주셨다가 뒤에 이제부터는 중도를 잡는 공부에 힘쓰라 하여 중묵(中默)이라 개명해 주었다.

양산종사는 사물에 대한 탐구심이나 집중력이 뛰어났고, 알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여 묻기를 좋아하고 끝까지 알려는 탐구력과 실험정신이 있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특이하고 엉뚱한 면 때문에 놀림과 핀잔을 받을 때도 있었으나 언제나 허심탄회하고 사욕이 없음을 알기에 좌우 동지들과 두루 친근하였다.  

 

무애(無碍)중 유애하는 참 자유인

양산종사는 일상사를 접할 때는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랴'하는 심정으로 수월하게 대해 주었다. 하지만 당신을 관리하는데는 철저했다. 일과나 운동, 식사 뿐 아니라 선(禪)과 간경(看經)과 일기(日記) 등의 수행과정도 철저했다.

양산종사는 남을 용납함에 너그러웠고, 아랫사람들에게 권위나 위엄이 없었으며, 예절이나 인습에 묶이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이었다. 안으로 수행에 철저했고, 무념해서 좋은 일은 무념하고, 유념할 일은 유념하여 늘 걸림 없는 가운데 가림이 있었고, 가림에 구속되지 않는 참다운 자유인이었다.

 

저서로 유명한 "인과의 세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