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저자: 리처드 도킨스 출판사: 을유문화사 (2006년 11월 25일 개정판)
다윈의 진화론이나 맨델의 유전에 관한 내용을 학창시절 학습했던 기억이 있다. 저자는 동물행동학자, 진화생물학자로 이 책은 1976년 간행되었으며 사회적으로 지대한 반향을 끌어왔으며 과학의 대중화와 생명이 원시시대에 출현하여 어떻게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유전자가 진화를 반복해 온 것처럼 작가는 수많은 생물학자들의 주장과 논문들을 검증하고 반박 또는 확정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확장해 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은 부분들을 정리해본다.
p.17 어떤 진실이 우리가 진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 진실을 원상태로 돌릴 수는 없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것 첫 번째 사항이다. -30주년 개정판 서문에서
p.27 우리가 우리들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자연선택의 개념이다. -초판 권두사에서
p.30 이 책은 마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공상 과학 소설처럼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라 과학서이다. 사실 소설보다 더 기이하다는 것이 진부한 표현인지는 몰라도 그것은 내가 진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다.
-초판 서문에서
p.41 철학과 인문학 분야에서는 아직도 다윈이 존재조차 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이런 일이 언젠가 고쳐질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어쨌든 이 책의 의도는 다위니즘의 일반적 옹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논점에 한하여 진화론의 중요성을 추구함에 있다. 나의 목적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이다.
p.42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이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성공한 시카고의 갱단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유전자는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때로는 몇백만 년이나 생을 계속해 왔다. 이 사실은 우리의 유전자에 특별한 성질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게 한다. 이제부터 논의하려는 것은, 성공한 유전자의 기대되는 특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의 이기주의는 보통 이기적인 개체 행동의 원인이 된다.
p.46 자세히 조사해보면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는 실제로는 모양을 바꾼 이기주의인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근원적 동기가 숨어 있는 이기적 동기라는 뜻이 아니라 생존 가능성에 대한 행위의 실제 효과가 우리가 처음 생각한 것과는 반대라는 뜻이다.
p.58 진화라는 다윈의 학설을 납득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으로 변할 수 있는 방법, 즉 무질서한 원자가 스스로 더 복잡한 패턴을 이루어 인간을 만들어 낸 방법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다윈은 인간의 존재에 관한 심원한 문제에 해답을 재공해 준다. 그것은 지금까지 암시된 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가능성 있는 해답이다.
p.67 초기의 자기복제자는 `살아 있다’고 하든 하지 않든 그들은 생명의 조상이며, 우리의 선조였다.
p.68 이렇게 하여 최초의 살아 있는 세포가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용기, 즉 계속 존재하기 위해 운반자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사는 `생존 기계‘를 스스로 축조한 것들이다. 최초의 생존 기계는 아마도 보호용의 외피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더 우수하고 효과적인 생존 기계를 갖춘 새로운 경쟁 상대가 나타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웠다.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생존 기계는 더 커지고 더 정교해졌으며 이 과정은 누적된 전진이었다. (중~략)
오늘날 자기 복제자는 외부로부터 차단된 로봇 속에 안전하게 거대한 집단으로 떼지어 살면서, 복잡한 경로를 통하여 외계와 연락하고 원격 조정기로 외계를 조작하고 있다. 그것들은 당신 안에도 그리고 내 안에도 있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것들의 유지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자기 복제자는 기나긴 길을 지나 여기까지 걸어 왔다. 이제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이다.
p.78 하나의 개체에 머물고 있는 유전자의 조합은 단명하지만 유전자 자체는 잠재적으로 수명이 매우 길다. 그것들이 밟는 길은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진다. 한 개의 유전자는 세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개체의 몸을 통하여 살아가는 단위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것이 이 장에서 논의하는 중심 과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존경받는 몇 사람의 동료가 완강하게 동의하지 않는 점이기도 하다.
p.90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의 제목은 `이기적 시스트론’도 `이기적 염색체‘도 아닌 `어느 정도 이기적인 염색체의 큰 도막과 더욱 이기적인 염색체의 작은 도막’이라고 붙여야 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매혹적인 제목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유전자를 여러 세대 동안 존속할 가능성이 있는 염색체의 작은 도막이라고 정의하고, 이 책의 제목을 `이기적 유전자‘라고 한 것이다.
p.93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서 파괴되지 않고 단지 파트너를 바꾸어 행진을 계속할 따름이다. 물론 유전자들은 계속 행진한다. 그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유전자들은 자기 복제자이고 우리는 유전자들의 생존 기계인 것이다. 유전자는 지질학적 시간을 사는 거주자이며, 영원하다.
p.95 이 같은 보편적인 특성 중에서도 이 책에 특히 관계 깊은 특성은 바로 유전자 수준에 있어 이타주의는 열세하고 이기주의는 우세하다는 것이다.
p.119 유전자는 스스로 직접 인형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의 프로그램 작성자처럼 간접적으로 자기의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 유전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생존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 후에 생존 기계는 완전히 독립하게 되며 유전자는 그 속에서 그저 수동적인 상태가 된다. 유전자들은 왜 그렇게 수동적이 될까? 왜 고삐를 잡고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을까? 그 이유는 시간적 지연 문제 때문이다.
p.129 시물레이션 능력의 진화는 주관적 의식의 발생으로 정점에 이른다. 왜 그와 같은 것이 생기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는 현대 생물학이 당면한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이다. 컴퓨터가 시뮬레이션을 할 때에 의식이 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으나, 그것들이 장래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인정해야 한다. 의식이 생기는 것은 뇌에 의한 세계의 시뮬레이션이 완전하게 이루어져 그 시뮬레이션 속에 자체의 모형을 포함해야 할 정도가 되었을 때이다. 분명히 생존 기계의 사지와 몸은 그것에 의해 모의 실험을 할 수 있는 세계의 중요한 한 부분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아마도 비숫한 이유에서 시뮬레이션 그 자체가 모의 실험을 해야 할 세계의 일부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인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 의식의 진화가 충분히 설명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부분적인 설명밖에 되지 않는 이유는 무한 회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형의 모형이 있다면 왜 모형의 모형의 모형은 없는 것일까?
p.145 메이나드 스미스가 제창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ESS‘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그는 이 개념이 원래 해밀턴과 맥아더의 착상이라고 한다. `전략’이라는 것은 미리 만들어진 프로그램의 행동 방침이다. 전략의 일례를 들어보면 “상대를 공격하라. 그가 도망치면 쫓아가고, 응수해 오면 도망쳐라”이다. 이러한 전략의 중요한 점은 개체가 이를 의식적으로 고안해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물을 근육을 제어하는 기계라고 생객해 온 것을 상기하기 바란다. 이 전략을 한 세트의 단순한 명령으로 축약하여 말로 표현하는 것은 이것을 활용하는데 편리한 방법이다. 알지 못하는 어떤 매커니즘에 의해 동물은 마치 이들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 즉 ESS는 개체군에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일단 그 전략을 수용하면 그것을 다른 대체 전략에 의해 능가할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정의된다. 그것은 미묘하고도 중요한 개념이다. 바꿔 말하면 개체로서 최선의 전략은 개체군의 대부분이 행하고 있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p.165 우리는 다윈 이래의 진화론에서 ESS 개념의 창안을 가장 중요한 진보의 하나로 되돌아 봐야 할 것 같다. 이 개념은 이권 충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다. 즉 그것은 거의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 동물 행동의 연구자는 `사회 조직‘을 애용하는 습관이 배어 있다. 사회 조직은 스스로의 생물학적 `이점’을 갖춘 독자적 실제로서 취급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지금까지 살펴본 실례에서 찾는다면 `순위제‘가 그것이다. 생물학자가 사회 조직에 관해 말한 여러 설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룹 선택주의자의 가설이 숨어 있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P.169 진화란 부단한 상승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된 수준에서 안정된 수준으로의 계기적인 불연속의 진전인 것 같다. 그 개체적 전체는 마치 하나의 자기 조절 단위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착각은 실제로 단일 유전자의 수준에서 진행되는 선택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유전자는 `우수성’으로 선택된다. 그러나 이 우수성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세트, 즉 현재의 유전자 풀을 배경으로 한 성과에 기초하여 판정되는 것이다.(중~략)
잘 갖춰진 몸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이기적 유전자가 진화적으로 안정된 세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P.214 랙에 따르면 개체가 한 둥지의 알 수를 조절하는 이유는 전혀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이 산아 제한을 행하는 것은 집단을 위한 자원을 과잉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의 살아남는 새끼를 실제로 최대화하기 위해 그들은 산아 제한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보통 우리들이 산아 제한에 결부시키고 있는 이유와는 정반대의 목표가 된다.
P.215 어미새는 애 낳기와 애 키우기 사이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한 마리의 어미새 또는 한 쌍의 짝이 구할 수 있는 먹이와 자원의 총량이 그들이 키울 수 있는 새끼 수를 결정하는 제한 요인이 된다. 랙의 이론에 의하면 자연 선택은 이들 한정된 자원들로부터 최대의 유리함을 유도하도록 초기의 한 둥지의 알 수(또는 한배의 새끼 수)를 조정한다고 한다.
P.318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 속에는 미토콘트리아라고 불리는 작은 몸체가 들어 있다. 미토콘트리아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화학공장이다. 만일 미토콘트리아를 잃으면 우리는 즉사하고 말 것이다. 이 미토콘트리아는 진화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 우리의 유사 세포와 힘을 합치게 된 공생 박테리아가 그 기원이었다는 논의가 최근 설득력 있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우리의 세포 속에 있는 다른 미세한 몸체에 관해서도 행해지고 있다. 혁명적 사고란 그 사고에 익숙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데 위의 설도 이와 같은 생각 중의 하나이다. 다만 이 설에 관해서는 이제 인정될만한 때도 도래한 듯하다. 우리의 유전자 하나하나가 공생 단위체라고 나는 추측한다. 우리는 공생적인 유전자들의 거대한 집합체인 것이다. 이 생각을 지지하는 증거를 실제로 제시할 수는 없으나 앞장들에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우리가 유성생식 생물의 유전자 작용을 생각할 때의 바로 그 사고방식 속에 이미 실제로 내재하고 있다.
P.327 인간에게는 오래도록 기여하는 능력과 개체 식별능력이 잘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호혜적 이타주의는 인간의 진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라이버스는 인간에게 갖추어진 각종 심리적 특성(질투, 죄책감, 감사하는 마음, 동정 등)이 다른 사람을 속이는 능력이나 사기를 알아차리는 능력, 사기꾼으로 보이지 않도록 회피하는 능력 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됐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교활한 사기꾼‘이란 존재이다. 언뜻 보기에 그들은 보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항상 받은 분량보다 조금은 부족하게 갚는다. 사람의 비대한 대뇌와 수학적으로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 소질은 보다 우회적인 사기 행위를 하고 동시에 타인의 사기 행위를 간파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서 진화했을 가능성까지도 있다.
P.335 새로이 등장한 수프는 인간의 문화라는 수프이다. 새로이 등장한 자기복제자에게도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명사의 이름이 필요하다. 모방에 알맞은 그리스어의 어근은 `mimeme’라는 것인데 내가 바라는 것은 `gene(유전자‘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의 그리스의 어근을 `밈meme’으로 줄여야 한다. (중~략)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양식,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번식할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몸에서 몸으로 뛰어넘는 것과 같이 밈이 밈 풀 내에서 번식할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과정을 매개로 하여 뇌에서 뇌로 건너 다닌다. 만약 과학자가 좋은 생각을 듣거나 또는 읽거나 하면 그는 동료나 학생에게 그것을 전할 것이다. 그는 논문이나 강연에서도 그것을 언급할 것이다. 이처럼 그 생각을 잘 이해하면 뇌에서 뇌로 퍼져 자기 복제한다고 말할 수 있다.
p.336 문화 환경 속에서 신의 관념이 안정성과 침투력을 주는 것은 도대체 그 관념이 갖는 어떤 성질 때문일까? 밈 풀 속에서 신의 밈이 나타내는 생존가는 그것이 갖는 강력한 심리적 매력의 결과이다. 실존을 둘러싼 심원하고 마음을 괴롭히는 여러 의문에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해답을 준다. 그것은 현세의 불공정이 내세에서 바로 고쳐진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불완전함에 대해서는 `영원한 신의 팔‘이 구원해 준다고 한다.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마치 의사가 처방하는 위약과 같아서 상상에 빠져드는 데 효력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뇌가 세대에서 세대로 쉽게 신의 관념을 복사해 가는 이유의 일부이다.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 내는 환경 속에서 신은 높은 생존가 또는 감염력을 가진 밈이라는 형태로만 실재하는 것이다.
p.337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현상을 유전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되는 이유는 자기 복제자이기 때문이다. 분자의 자기 복제를 가능케 하는 조건은 원시 수프에서 그 일을 맡고 있다. 그리하여 30억 년 전부터 이 지상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기 복제자는 DNA였다. 그러나 DNA가 영원히 그 전매권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종류의 진화를 시작하게 된다. 일단 새롭게 시작된 진화가 이미 낡은 유형이 된 진화를 따라야만 할 필연성은 없다. 유전자를 단위로 하는 낡은 진화는 뇌를 만들어 내는 것에 의해 수프를 마련해 주었고, 그 수프 속에서 최초의 밈이 생겨났다. 일단 자기 복제 능력이 있는 밈이 등장하면 그들은 낡은 유형의 진화보다 훨씬 빠른 독자적 유형의 진화를 시작한다.
P.343 인간의 뇌는 밈이 살고 있는 컴퓨터이다. 거기서 시간이 아마도 저장 용량보다 중요한 제한 요인이며, 심한 경쟁의 대상일 것이다. 인간의 뇌와 그 제어를 받는 몸이 동시에 하나 또는 몇 종류 이상의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밈이 한 인간의 뇌의 집중력을 독점하고 있다면 `경쟁자’의 밈이 희생되는 것은 틀림없다. 밈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광고 게시판의 공간, 신문 기사의 길이, 그리고 도서관의 서가 공간 등과 같은 상품을 대상으로 경쟁하고 있다.
P.346 나는 상호 적응하는 유전자 복합체의 진화와 같은 방식으로 밈의 복합체가 진화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선택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자기가 취하고 있는 문화적 환경을 이용하는 밈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 문화적 환경은 같은 식으로 선택을 받고 있는 밈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밈 풀이 진화적으로 안정된 세트로서의 특성을 나타내게 되어 새로운 밈은 쉽게 침입할 수 없을 것이다.
P.348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 안주할 여지가 없고 세계의 전 역사를 통해 과거에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교육하는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었지만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한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는 것이다.
P.415 우리 자식의 유전자들이 서로 협력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로의 같은 출구-알이나 정자-를 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인간과 같은 한 개의 생물체에 들어 있는 어떤 유전자도 만일 정자 또는 난자라고 하는 재래의 경로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을 퍼뜨리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을 택하여 협력을 덜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몸 속의 다른 유전자들과는 다른 일련의 장래 결과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P.416 DNA의 절편 중에 염색체 속에 편입하지 않고 세포, 특히 박테리아 세포의 액체 성분 속에 자유로이 떠다니며 증식하는 놈들이 존재한다. 그 절편들은 비로이드라든가 플라스미드라든가 하는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플라스미드는 바이러스보다 작고 보통은 소수의 유전자들로 되어 있다. 일부 플라스미드는 이음새도 없이 매끄러워서 이음새를 알 수 없다. 이 같은 플라스미드는 염색체의 어떤 부분과도 구별이 어렵다. 같은 플라스미드는 또한 자신을 자를 수 있다. 끊어지고 이어지며, 순식간에 염색체에서 뛰어내리고 뛰어오르는 이 DNA의 능력은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이후에 확실히 밝혀진 매우 흥미로운 사실 중이 하나이다.
p.427 자연 선택은 스스로의 증식을 확실히 하도록 세계를 조작하는 유전자에게 이익을 준다. 이것은 바로 내가 `확장된 표현형의 중심 정리‘라고 하는 것을 이끌어 낸다. 즉 “동물의 행동은 그들의 유전자가 그 행동을 하고 있는 둥물의 몸 내부에 있거나 없거나 그 행동을 위한 유전자의 생존을 최대로 하는 경향을 가진다.” 나는 `동물의 행동’이라는 문맥으로 썼는데 물온 이 정리는 색깔, 크기, 형상 그리고 그 밖의 무엇에나 적용된다.
p.438 물론 생물은 결코 제도판 위에서 설계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생물은 실제로 새로운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새 출발하는 것이다. 모든 생물체는 단세포에서 시작되어 새롭게 생장한다. 그것은 조상의 설계 고안을 DNA의 프로그램 형태로 이어받지만 그 조상의 신체 기관을 인수받지는 않는다. 그것은 부모의 심장을 받지 않고 그것을 새로운(가능하면 계량된) 심장으로 고쳐 만든다. 단 세포로서 재출발하는 새로운 개체는 부모의 심장과 동일한 설계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생장하고 더 나아가 거기에 개선이 가해질지도 모른다. 여기서 독자는 내가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내려 하는지 알 것이다. `병목형‘ 생활사의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제도판으로 돌아가는 것과 동등한 것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이다.
P.444 우리 스스로를 명심시키는 하나의 방법은 오늘에 있어서까지도 한 유전자의 표현형 효과가 반드시 모두 그것이 위치하는 개체의 몸 속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말해 사실상 유전자는 개체의 체벽을 통과하여 바깥 세계에 있는 대상을 조작한다. 대상의 일부는 생명이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다른 생물이며, 또 어떤 것은 매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방사상으로 뻗은 확장된 표현형의 힘의 그물 눈 중심에 위치한 유전자를 볼 수 있다. 세계 속에 있는 하나의 대상물은 여러 생물 개체 속에 자리잡은 여러 유전자로부터 오는 영향력의 그물이 집중하는 중심인 것이다. 유전자의 긴 팔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모든 세계에는 멀리 또는 가깝게 유전자의 표현형 효과를 연계하는 인과의 화살이 종횡으로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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